역사·문화

한국사 속 침향

우리 땅에서는 자라지 않았기에, 침향은 언제나 바다 건너온 가장 귀한 향이었습니다.

834신라 흥덕왕 9년

신분에 따라 침향을 금하다

흥덕왕은 사치를 금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법령을 내렸습니다. 『삼국사기』 잡지(雜志)의 색복·거기·옥사 조에는 신분별로 쓸 수 없는 물건이 자세히 적혀 있는데, 동남아시아의 자단(紫檀)과 함께 침향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.

진골은 수레와 안장틀에 침향을 쓸 수 없었고, 6두품·5두품과 그 아래 백성은 안장틀과 가마, 집을 꾸미는 데 침향을 쓰지 못했습니다. 거꾸로 말하면, 금해야 할 만큼 귀족 사이에 침향이 널리 쓰였다는 뜻입니다.

진골. 안장틀(鞍橋)은 자단·침향을 금한다.
출전
『삼국사기』 권33 잡지 제2 색복·거기·기용·옥사
8~9세기통일신라

이슬람 상인과 점성국의 침향

국사편찬위원회 『한국사』는 『삼국사기』에 보이는 외래 사치품을 통해 신라와 아라비아·페르시아 상인의 교역을 살핍니다. 대모(玳瑁)와 함께 신라 귀족이 즐겨 쓴 물품이 자단과 침향이었으며, 침향은 주로 점성국(占城國, Champa)과 수마트라에서 생산되었다고 기술합니다.

점성국은 지금의 베트남 중부에 있던 참파 왕국입니다. 그 북쪽 경계는 오늘날의 하띤성과 맞닿아 있었습니다.

참파 왕국의 영역(노란색)
출전
국사편찬위원회 『한국사』 고대 Ⅲ-2 「이슬람 상인과 신라의 무역」 원문
751통일신라 경덕왕 10년

석가탑 사리장엄구의 침향

1966년 불국사 삼층석탑(석가탑)을 보수하려고 해체하던 중 사리장엄구와 경전, 공양구가 나왔습니다. 그 가운데 향나무와 침향나무 조각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. 성스러운 사리와 함께 넣었을 만큼 침향을 귀히 여겼다는 증거입니다. 이 유물은 사리장엄구 일괄 유물로 국보에 지정되었습니다.

유물
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· 침향 조각
발견
1966년
삼국유사고려 일연 편찬

부처의 어금니를 담은 침향합

『삼국유사』 탑상 편 「전후소장사리」에는 잃어버린 부처의 어금니 함을 되찾은 이야기가 나옵니다. 함은 다섯 겹이었는데, 가장 안쪽이 침향으로 만든 합이었습니다.

함은 본래 속 한 겹은 침향합(沈香合)이고, 다음 겹은 순금합, 다음은 백은함, 그다음은 유리함, 또 그다음은 나전함이었다.
출전
『삼국유사』 권3 탑상 제4 전후소장사리(前後所將舍利)

원문 인용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, 한국고전종합DB의 번역문을 따랐습니다.